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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장날풍경]신성계곡 녹색길 1구간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01-20

 

 

구름에 달 가듯이

 

신성계곡 녹색길 1구간

 

  글, 사진. 강병두

 

이육사의 시 『광야』에는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대목이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청송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신성계곡 녹색길’을 걷노라니 발걸음마다 새들이 지지배배 합창을 한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돌리면 켜켜이 색동옷을 입은 산을 배경으로 낙엽들이 노란 설탕 눈처럼 날린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신록이 무르익으며 가을에는 색동옷을 입은 단풍이 흐드러지고 겨울에는 따사한 흰 옷을 입으니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사시사철 형형색색 아름다운 나라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1구간 출발지점이다

 

 

혹시 모를 안전에 대비해 배낭과 스틱에 등산화까지 단단히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가벼운 여정이라 생각하니 마음과 몸이 가볍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유명한 등산가이자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알래스카 데날리 동계 등반에서 소식이 끊기고 연락이 없자,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관심을 표시한 적이 있다. 한 기자가 집에 홀로 남은 부인에게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을 했는데, 부인이 말을 했다. “그는 지금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머나먼 여정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든 관심을 잊어주시고 각자 맡은 바 일에 매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했단다. 길을 나서는 지금, 떠오르는 글귀이니 아마도 나의 마음속에는 그와 그의 부인을 향한 존중의 마음이 자리하나보다. 

 

뚝방길을 따라 걷는 코스 우측으로 개천과 산이 색동옷을 입고 있다.

 

 

전국에는 동식물의 이동과 보전을 위하여 녹지대와 녹지대를 연결하는 다양한 녹색길이 있는데, 청송 녹색길은 길안천이 청송을 지나는 구간에 걸쳐 자리해 있다. 신성계곡 녹색길에는 4개의 지질 명소인 방호정 감입곡류천, 신성리 공룡발자국화석, 만안자암 단애, 백석탄 포트홀이 있다. 지질탐방로는 총 3개 구간으로 나뉘었고, 9개 소규모 주제에 맞게 길 이름을 각각 붙어주었다. 12㎞ 거리로 천천히 쉬면서 걸어도 4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되는 길이다.

 

가을 낙엽

 

 

 

지질공원 안내판과 안내소

 

 

❍ 1구간 <방호정 효(孝)길> : 신성교 – 갯버들하천길 – 방호정 – 솔밭쉼터 – 헌실쉼터 / 4.2km / 1시간 20분 소요

❍ 2구간 <자암적벽길> : 헌실쉼터 - 만안자암 단애 - 반딧불농장 / 2.9km / 1시간 소요

❍ 3구간 <백석탄길> : 반딧불농장 – 하천과수원길 – 백석탄길 - 목은재휴게소 / 4.7km / 1시간 45분 소요

 

주위가 추수준비로 한창인 가운데 신성교 공터에 주차하고 오전 8시 56분에 출발한다. 길안천을 끼고 단풍으로 울긋불긋하게 물든 가을 산을 배경으로 푸름이 더해진 잔디를 밟으며 길을 걷는다. 길 양쪽 옆으론 구절초와 갈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번잡한 도심을 떠나 한적한 길을 걷는 묘미를 한껏 만끽한다. 길안천 뚝방 잔디길이 끝나고 아래로 하천 길을 따라 진입하다보니 바로 인가가 보이고 다리 건너편 우측에 방호정이 보인다.

 

검정개

 

다리를 건너기 전 작은 가게 한 귀퉁이에 외로움에 찌들어 보이는 검정개 한마리가 개집에서 나와 낯선 이를 보고도 필사적으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경계심 보단 반가움이 더 큰걸 보니 어지간히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같이 놀다 발걸음을 옮긴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다리 건너에 있는 방호정은 다리 위를 걸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다리 위에 멈춰 서서 좌우로 천천히 내려다보길 권한다. 

 

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51호

 

 

방호정은 1619년, 조선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모친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묘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건립하고 자신의 호를 따 이름 붙인 정자다. 녹색길 1구간 별칭이 ‘방호정 효(孝)길’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푸른 바위와 형형색색의 단풍이 조화를 이루고, 아래엔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벼랑 위에 터를 잡아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절경이다. 방호정은 자연석 기단(基壇)과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운치를 더했다. 각 칸에 들어열개문(위로 들어 여는 문)을 달아 개울물과 앞쪽의 전망이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한 구조다. 

 

기존 암석이 잘게 부서진 것을 퇴적물이라 하고, 퇴적물이 쌓여서 굳은 암석을 퇴적암이라 한다. 퇴적물은 주로 흐르는 물에 의해 이동하다가 흐름의 속도가 느려지는 곳에 쌓인다. 이후 지하 깊이 묻혀 딱딱한 암석이 되는데, 방호정은 이러한 암석이 지각의 변동으로 융기된 곳 위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는 아담하지만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 정자 주변 크고 우거진 나무 등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녹음이 짙은 여름, 이곳 강가는 휴가를 즐기기에 그만으로 보이는데 단풍이 물든 지금, 한숨 돌려 쉬어가기에 최적으로 보인다. 방호정의 솟을대문, 송하문(松霞門) 밖에는 이 정자의 연륜을 대변하듯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앞에서 강을 바라보고 서있자니 빛을 받은 고목 아래, ‘융단 같은 그림자 길을 따라 단풍 속 터널로 들어가라’는 암시를 주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사진가인 나로서는 이런 것이 현장에서 자연이 주는 이미지인 것이다.

 

 

자연이 주는 이정표. 나무 그림자 안내판

 

 

이정표가 안내하는 자갈길을 따라가다 보니 강을 건너는 돌다리가 나온다. 재미있게 돌다리를 건너는 것까진 좋으나 그 다음에는 이정표가 없다. 가는 방향을 따라가라는 뜻은 이해하나 초행자들은 당황할 수도 있겠다 싶다. 걷는 여행에 이골 난 사람들은 인위적인 표식은 물론 자연적인 표식인 나무나 산세 등 다양하게 감지하여 길을 찾아나가는 것을 안다. 특히 자갈길은 물길의 흐름에 따라 길 자취나 물 수위표식이 자주 바뀌는 편이니 세밀히 보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국에서 다양한 여행객들이 찾는 녹색길이니 편리한 안내조치를 하여 배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풍나무 터널, 단풍이 흐드러진 풍광, 돌다리

 

 

자갈밭 모퉁이를 돌 즈음에 왼쪽으론 과수원이 보이고, 오른 쪽엔 길안천을 낀 절벽이 자리한다. 다시 돌다리가 나와 건너면 산길 초입에 들어선다. 가을 수확으로 곳곳이 분주한 녹색길과는 달리 조용하고, 단풍 속으로 들어가 낮은 야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신성계곡 한반도지형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왼쪽에 길안천을 끼고 한반도 지형의 우측을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인기척에 놀랐는지 백로무리가 날아오른다. 화려한 날갯짓이 보기엔 아름다운 광경일지 모르나 몸집이 큰 백로의 입장에서는 날아오르는 과정에 굉장한 에너지 소비를 하여 먹이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루나무가 있는 농로길, 단풍나무

 

 

구간 종착지에 다다를 즈음에 미루나무 세 그루를 보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수종이지만 예전엔 가로수로 많이 심겨 있었다. 어릴 때 본 적이 있는 드라마 『전우』에서 나시찬이라는 배우가 소대장 역으로 나오는데 동료를 구하기 위해 혼자 유인작전을 펼치다 낙오되어 미루나무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을 지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면이 불현듯 생각난다. 그래서 흔히 ‘가을 여행길은 추억을 찾아 떠나는 길’이라 하는가 보다. 

 

 

1구간 종착지, 헌실쉼터, 근곡광산 안내판 건너편 작은 동굴이 보인다.

 

 

마지막, 헌실쉼터다. 근처 50년 전에 개광하여 폐광된 근곡광산을 끝으로 신성계곡 녹색길 1구간을 마무리한다. 도착하고 보니 시계가 오전 10시 22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도 1시간 20여분이면 닿을 거리니 힐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물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의 향기에 취해보고, 울긋불긋 오색물감 푼 듯한 가을 풍광에 몸을 적셔보기를 권해본다.

 

신성계곡 녹색길 안내센터(054-873-5116)

 

 

글쓴이 : 강병철
안동 지역을 터전삼아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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