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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마을이 있는 풍경_영양군(2)]비릿골(飛鯉谷) 효자(孝子) 조검(趙儉)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01-09

 

 

마을이 있는 풍경

 

비릿골(飛鯉谷) 효자(孝子) 조검(趙儉)

 

글. 김범선

그림.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수월아, 넌 어쩌면 고추 농사를 이리 잘 짓니? 붉은 고추가 참 실하고 좋더라.”

조검이 읍내 장에 다녀오다가 만난 수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성이지. 오호호, 고추도 사람의 마음을 아나 봐.” 수월이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검아, 넌 어쩜 담배농사를 그렇게 잘 짓니? 담뱃잎이 납실한 게 너무 보기 좋더라.”

“담배 농사도 정성이야, 수월아 저녁 먹고 밤에 만나자.” 강의 하류 성황동에 살고 있는 조검은 읍내로 가려면 무다리를 거쳐 높은 당뜰재를 넘어가야 했다.

 

 

옛날에는 상원(上元)에서 읍내로 나가려면 곡강(曲江 )건너편 척금대 아래쪽에 높고 험한 당뜰재를 넘어야 읍내로 나갈 수가 있었다. 조검은 무다리에 살고 있는 수월이를 만나기 위해 밤이면 몰래 그녀를 찾아 왔다. 강물이 반월형으로 흘러 무다리(무드리)라 불리는 동네에 사는 수월이는 안동 권씨로 귀밑머리 어여쁜 낭자였다.

 

두 사람은 18세 동갑나이로 밤이면 몰래 달밭골에서 만나 달빛에 반짝이는 척금대에서 흘려 내려오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였다. 수월은 고추 농사를 잘 짓고 조검은 담배 농사를 잘 지어 사람들은 무다리 처녀는 ‘고추처녀요’, 성황동 총각은 ‘담배총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검의 아버지가 읍내 장에 가는 길에 험한 당뜰재를 넘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평온 하던 조검의 집에 가장이 죽자, 가정은 난리가 났다. 더구나 조검의 어머니마저 충격으로 병이 들어 두 사람은 자주 만날 수도 없었다. 조검은 어머니의 병간호에 정신이 없었고 수월은 달밭골에 올라 달빛에 반짝이는 무다리 강물을 바라보며 검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자주 만날 수가 없자, 사랑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검아, 잉어가 먹고 싶구나. 헉헉헉..”

“어머니, 잉어 한 마리만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아요?”

“그래, 잉어만 먹으면, 헉헉....”

아들 조검은 기가 찼다. ‘동지섣달 엄동설한에 어디서 잉어를 구한다는 말인가?’ 조검은 상황동에서 아버지 조령과 같이 담배농사를 지으며 식구 셋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세가 기울어진 지 일년, 매일매일 병약해져만 가는 어머니는 조검에게 남아 있는 가족이자 희망이었다. 잉어 한 마리만 푹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강가로 나온 조검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얼어붙은 강에서 잉어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바위를 들고 얼음 위를 내리쳐도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 바위가 튕겨질 뿐이었다. 살을 에는 강바람을 맞으며 반나절을 그렇게 하다가 그만 애가 타고 속이 상해 벌떡 일어나

 “아부지요, 아부지요, 어무이가 잉어 먹고 싶다니더, 우째면 좋니껴.” 하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고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이 떨어지는 순간, 꽁꽁 얼어붙은 강물 위로 잉어 한 마리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얼음 위에 툭 떨어졌다. 엄지 손톱만한 고기비늘이 반짝이는 큰 잉어가 한 마리가 얼음 위를 벌떡거리며 뛰고 있었다. 조검은 그 잉어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곤 검정 가마솥에 물을 붓고 푹 고아 어머니에게 드렸더니 거짓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 나았다.

 

 

조검이 살았던 이곳은 원래 마을 입구에 3백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지키고 있어 성황동(城隍洞)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아들의 효심으로 잉어가 얼어붙은 강에서 하늘로 날아서 나왔다고 해서 날비(飛) 잉어리(鯉), 비리동(飛鯉洞)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지금의 영양읍 상원2리 상원교를 건너 상원로에서 강을 따라 갈라지는 비리동천(飛鯉洞川)길은 이런 스토리가 전해지는 도로명이다. 이 마을에는 조검의 선조, 조원(趙沅)의 산소가 있다. 조원은 총각으로 처음 이곳에 와서, 함양 오씨에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를 했는데 장인이 죽어 명당자리에 산소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원의 처가 밤에 신을 거꾸로 신고 명당자리 광중에 물을 퍼부어 산소를 못 쓰게 했다. 그 후 원이 죽자 그곳에 산소를 썼더니 한양 조씨는 후손이 번성했다고 한다.

 

 

영양군은 신라시대에 고은현(古隱縣)이었다. 지금처럼 개발로 새로 생긴 도시가 아니고 옛날부터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옛고(古), 숨을 은(隱), 한국의 샹그릴라였다. 그래서 지명 하나에도 스토리가 숨어 있다. 앞에서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잉어에 대한 효사상은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에도 유사한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야기처럼 실명(實名)과 지명(地名)까지 구체적인 기록은 드물다. 

 

지금은 고령의 노인들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신다. 이전에는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고 한 집에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 시대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비릿골(飛鯉谷) 효자 조검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글쓴이 : 김범선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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