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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이미홍_영덕을 만나다]근대역사문화공간과 영해의 시대공감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2-03-21

 

 

영덕을 만나다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영해의 시대공감

 

 

글 이미홍

 

  영해양조장 및 사택 (사진. 문화재청)

 

 

우리가 과거의 시간들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갈래이다. 그것은 영화 속 한 장면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우리를 그 시간 속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를 꼽자면 과거의 시간들이 축적된 공간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공간 속에 켜켜이 쌓아두고 빛바랜 채로 그 자리에 서서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 거리를 발품 팔아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나온 날들과 지금이 만나고, 옛 사람들의 흔적과 지금 사람들의 기억이 만나는 장면에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공간이 주는 울림이 있다. 그 지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 근대의 공간이다. 공간이 남아있지 않은 오래전 시간은 그저 역사 속의 한 시대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온기가 배어있는 건축물들이 있는 근대의 거리는 생생한 감각으로 역사 속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동해안을 따라 가는 자락에도 그런 근대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영해만세시장이 있는 골목이다.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만나는 영해는 자칫 스쳐 지나기 쉬운 동네이지만, 100년 넘은 장터와 목은 이색의 흔적이 있어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곳이다. 거기에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근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운치 가득한 골목들을 간직하고 있다. 영해 장터거리가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골목들이 궁금해 길을 나섰다. 

 

영덕에서 영해로 들어가는 길은 7번 국도를 기준으로 할 때, 영덕휴게소를 지나 영해와 대진 해수욕장 방면으로 내려서 가는 방법과 영덕휴게소에서 뒷길로 접어들어 3.1 의거탑을 거쳐 예주로를 따라 영해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기준에서 영해를 가는 방법이다. 강구에서 영해로 이어진 길을 비롯해 요즘은 사통팔달 이어진 지방도를 따라 어디에서든 영해를 갈 수 있지만, 동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7번 국도를 넘나들며 다니는 맛이 있다. 

 

시장을 가려면 영덕휴게소를 지나 송천교차로에서 만세시장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남쪽에서 영해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영해로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하고 구 시가지를 거치지 않고 곧장 시장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간판이 붙은 식당들도 많아 여행길에 허기를 채우기에도 좋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보러 영해를 찾은 첫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영해만세시장이었다. 만세시장에 가면 어쩐지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19년 3.1운동 때 제일 많이 만세소리가 울려 퍼진 곳은 장터였다. 영해도 그랬다. 영해만세시장이 시작되는 중앙에 영해3.18독립만세운동기념탑이 서 있는 까닭이다. 기념탑을 시장 앞 광장에 세우면서 영해시장 이름을 영해만세시장으로 바꾸었다. 3.18만세운동이 일어난 시장이라는 공간스토리를 잘 살렸다. 말하지 않아도 그 내력이 짐작되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해시장 3.1의거기념탑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사는데 있어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한 일이다. 먹고 살 걱정이 태산인 척박한 시절에도 시장은 얼기설기 부대끼면서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오가는, 민초들을 살아내게 하는 장소였다. 

 

 

장날 영해만세시장 풍경

 

영해장터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장소로 경북북부 동해안 지역을 아우르는 교역의 거점이었다. 흥성하던 장은 일제강점기 만세운동이 장터를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삼엄한 경계에 기세가 꺾이는 듯 했으나 다행히 장터는 없어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평해, 울진 사람들까지 불러 모으는 큰 장이 섰다. 영해면사무소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들어와 있는 가운데 근대 산업시설인 양조장과 금융조합이 들어섰고, 근대식 학교들이 들어서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람이 있는 곳에 장꾼들이 몰리는 이치에 따라 근동 사람들이 영해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만세시장 기름방에서 만난 만세시장 사무국장은 2019년도에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일을 맡아서 했다며,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보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구시가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곳 영해만세시장이 있는 곳은 신시가지인 셈이다. 구시가지라고 해도 차로 가니 면사무소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영해부 부사들의 송덕비

 

면사무소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먼저 면사무소 입구 담장 너머 소나무와 비석들이 보인다. 영해부 부사들의 송덕비이다. 영해는 조선말까지 도호부사가 관장하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소재지인 성내리는 영해읍성 내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영해면사무소가 자리 잡은 언덕에서 북서쪽을 살펴보면, 그 아래 집들이 둥글게 돌아가며 위치해 있는데, 그 골목길이 성곽의 흐름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실제로 집들을 들여다보면, 바깥쪽은 담장을 만들었지만, 면사무소를 향한 안쪽은 읍성의 성벽이 담장 구실을 하고 있다. 

 

옛 영해읍사무소

 

일제는 1914년 강제수탈과 통치를 위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영해군을 의도적으로 군소재지에서 면소재지로 축소하고 읍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1914년의 이 행정구역 개편은 1919년 영해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이 다른 곳보다 더 격렬하게 진행되는 원인이기도 하였다. 면사무소 오른쪽에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는 옛 영해관아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섰던 영해읍사무소의 흔적 위에 지금의 면사무소가 지어졌다. 한 공간 안에 고려와 조선시대 예주와 근대 영해군과 현대의 영해의 시간이 섞여 있다. 

 

오래된 도시의 지명은 가보지 않았어도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명과 골목 안에 쌓여가는 느낌과 기억은 역사가 오래될수록 깊이를 더한다. 영해의 옛 이름은 예주다. 영해면 내에 들어서면 예주길이라는 길 이름을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된다. 󰡐왜 온통 예주길일까?󰡑하는 의문을 품는 것에서부터 영해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길 이름은 예주 2길이었다가 예주 4길, 5길로 이어지고 오래된 건물을 찾아 걷다 보면 어느새 예주3길의 입새에 이른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 것을 예주라는 길 이름으로 먼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영해근대역사거리는 예주의 문화 행정의 중심이었던 예주목 관아가 있던 영해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장터골목과 관공서, 금융조합, 양조장 등이 평행을 이루면서 앞과 뒤, 동과서로 골목으로 연결되며 뻗어 있는 ‘이면 도로’, 즉 근대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영해의 뒷골목’ 지역을 묶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 현황도

 

 

영해면사무소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장터골목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의용소방대와 금융조합과 양조장이 있는 거리가 이어져 있다. 골목 안 근대의 풍경을 담으려고 영해면사무소에서 의용소방대를 지나 아래로 난 골목을 따라 내려갔다. 

 

의용소방대 건물 담벼락을 끼고 금융조합으로 이어진 길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들자 빛은 바랬으나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벽돌 건물이 나타난다. 예주2길 에서 만난 영해금융조합이다. 

 

영해 의용소방대 모습

 

1935년에 건립되어 영해지역 경제에 주요한 위치를 점했던 공간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모더니즘 양식으로 건립되어 독특하면서도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협은행의 지점 영업장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영해사람들에게 애용(?)되어 왔던 만큼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폭탄이 떨어져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굳건함이 느껴지는 반면 세련된 일면이 있어 그 안이 한없이 궁금해지는 공간이다.  

 

구 영해금융조합 

 

금융조합에서 골목을 따라 내려간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영해양조장과 사택이 있다. 사택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잡는 것이 있으니 모퉁이 남문점빵이다. 따끈따끈한 호빵과 눈깔사탕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남문점빵 앞에서 교회 뒷골목으로 한 걸음만 더 가면 남문정미소다. 정미소는 지금도 영업을 하는 영업장이라 그런지 근대역사문화공간 구역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남문점빵

 

 

아쉽지만 정미소를 뒤로 하고 대신 양조장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양조장 사택 담장 너머로 술 담는 커다란 옹기들이 보였지만 양조장은 초록색 천으로 덮인 채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이 들어서는 자리이다. 전시공간과 카페공간이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 성격의 근대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바로 앞 철물점에 모여 바둑 훈수를 두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말씀해주신다. 이 거리에 사시면서, 양조장 막걸리 냄새를 수도 없이 맡았을 어르신들이 낯선 이의 질문에도 친절히 응해주신다. 

 

 

영해양조장 내부 (사진. 문화재청)

 

 

 

바둑판으로 다시 관심을 돌리시는 어르신들을 지나 장터골목으로 갔다.  골목을 이리저리 오가며 뜯어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공간들이 옛날 영해장터 골목에 있다. 북적대던 자취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골목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쓸쓸하면서도 정겨웠다. 창문을 열고 “뭐 하러 왔냐고󰡓 내다보며 묻는 옛 식당 할머니와 자전거를 대문간에 기대 세우고 면사무소 뒷길 목재소와 양조장 터를 가리키는 할아버지가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영해장터거리 근대골목

 

영해 장터골목은 흥해장이 흥성하던 예전에는 골목골목 상가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면사무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들며 연결되는 골목 안에 일부 구간만이 남아있다. 아직도 어르신들 중에는 영해장터하면 이곳 근대거리의 장터를 떠올리는 이도 있지만, 장을 보러 가는 곳은 새로 옮겨간 영해시장이다. 면사무소 앞뒤로 제법 번듯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중심으로 길게 옛 장터골목이 맴을 돌듯이 이어졌다. 상가였던 집들의 형태는 대체로 비슷했지만 약간씩 달랐고, 주인의 감각에 따라 몇 차례씩 보수를 한 집들과 옛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집들이 섞여 있었다. 장터골목 끝자락에 자장면집이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자장면집 건너, 골목 언저리에는 카페가 새로 생겼다. 리모델링을 한 듯 보였는데 외관에는 예전의 식당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다.

 

영해장터 골목이 지금도 그 형태를 유지하며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과거의 경관을 허물지 않고 시장이 옮겨간 후에도 식당을 하던 그 집 그대로 살림집으로 고쳐 살아온 이 골목 안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장소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재에도 존속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수백 년에 걸친 장소의 기억이 이 장터 뒷골목에 담겨 있다. 5일과 10일이 장날인 영해장은 그 기세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장날이면 바다와 뭍에서 온 물산들을 풀어놓고 흥정을 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떡집이며 기름방이며 사람들로 북적인다. 근대거리를 돌아 오래된 장날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영해근대역사문화 거리이다.  

 

근대의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박제된 상태로 존재하는 건물이 아니라 그 골목 안에 우리의 시간과 기억을 더해 현재에도 생생하게 쌓아나갈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가 머문 공간을 감히 가질 수 있을까. 영해의 근대 거리에서 그 답을 생각한다.  

 

영해장터거리 근대골목

 

 

 

 

 

 

 

 

글쓴이 : 이미홍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융합콘텐츠학과를 졸업하고, 민속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저서로 안동의 문화인물『하남 류한상』, 안동문화100선『안동댐』등이 있다. 현재 웅부문화원연구소부소장, 안동문화원 동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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