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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울진 죽변항, 붉은 겨울의 "마주르카"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2-02-07

 

동해연안의 생활문화

 

 

울진 죽변항, 붉은 겨울의 "마주르카"

 

 

글. 남효선

  

동해안의 명품브랜드인 대게철이 돌아왔다. 해마다 12월이면 대게 주산지인 경북 울진의 죽변항은 대게 조업 준비로 부산한 하루를 보낸다. 올해는 죽변항과 후포항의 대게 자망어선 70여척의 첫 투망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게 조업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 죽변항이 내다보이는 죽변수협 위판장은 바람이 귓불을 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위판을 준비하는 어부들과 대게 맛을 보기위해 외지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항구에는 밤새 조업을 마치고 대게를 가득 실은 자망어선들이 삼삼오오 입항해 닻줄을 던지며 위판을 서두르고 있다. 어부들은 죽변항 연근해에서 밤새 건져 올린 대게를 잽싼 손놀림으로, 10마리씩 크기별로 모듬을 지어 죽변수협 위판장에 가지런히 깔아 놓는다. 대게 공개위판을 거치기위해서이다. 위판장을 가득 채운 󰡐울진대게󰡑는 흡사 열병식을 기다리는 병사처럼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고, 죽변수협 소속의 중매인들은 위판장을 누비며 살이 꽉 찬 대게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찔러보며 유심히 살핀다.  

 

어부들과 중매인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미리 주문 받은 물량을 제 때에 공급하기 위해 먼저 위판을 받으려고 위판 순서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때문에 죽변수협과 대게잡이 어민들로 구성된 자망협회는 대게 조업기간 위판순서를 정하고 엄격한 규정에 의해 위판에 응한다. 

 

죽변항에서 정착한 대게 위판순서는 이른바 '구지뽑기'에 의한 '굴뚝차례' 방식이다. 예컨대 오늘 첫 경매에 응한 배는 다음 번 입찰 때에는 제일 마지막에 위판에 임하는 방식이다. 바다라는 총유자산 속에서 삶을 영위해 온 어민들에게 오랜 세월 합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자치규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는 셈이다.

 

 

죽변항을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와 손전화기의 셔터를 눌러댄다. 집게다리를 길게 내뻗으며 꿈틀대는 울진대게를 렌즈에 담기 위함이다. 부모와 함께 울진 죽변항 맛 나들이를 나선 앳된 얼굴의 어린 소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마트폰에 울진대게의 잘생긴 모습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위판준비를 서두르는 어부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지난해와 달리 대게가 풍어를 이뤘기 때문이다.

 

오전 9시, 어부들과 대게상인들과 중매인들 그리고 죽변항을 찾은 외지 관광객들로 왁자한 죽변수협 위판장이 호루라기 소리에 정적이 찾아든다. '울진대게' 공개 위판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이다.

 

 

대게는 기온에 매우 민감한 어종이라 위판 당일 기온이 영하 5도 이상 뚝 떨어지는 날이면 위판시간을 1시간 이상 늦춰 진행한다. 대게는 기온이 하락하면 제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 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면 죽변수협은 위판시간을 1시간 이상 늦추고, 어민들은 어선 안의 어창(魚倉)에 대게를 둔 채 기온이 오른 후 입찰에 응한다. 이렇게 해야 온전한 상품 가치를 유지할 수 있고 또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변항과 후포항을 이용하는 모든 어선은 반드시 위판과정을 거쳐야 한다. 죽변수협을 비롯하여 후포수협의 공개위판은 경매방식으로서 죽변수협과 후포수협으로부터 위판 허가를 받은 중매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 경매는 일명 󰡐후다(나무조각으로 만든 경매용 도구)󰡑를 이용한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죽변항에는 약 20명의 중매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울진의 남쪽 관문인 후포항에는 40명의 중매인이 위판가격을 결정한다. 공개위판에 응할 수 있는 중매인은 반드시 '노란색 번호'를 단 모자를 착용하고 입찰에 응해야 하는데, 이는 일반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죽변수협 직원인 경매사가 위판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면 흥성거리던 죽변항은 일순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가지런히 진열된 대게 앞에 선 경매사를 중심으로 대게의 상품성을 살피던 중매인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손바닥 크기보다 약간 작은 후다를 옷깃으로 가리고 대게 한 마리의 가격을 기입한 후 경매사에게 건넨다. 경매사는 중매인이 내미는 후다를 순서대로 받아, 제시한 금액을 재빠른 눈길로 읽어내고 기억한다. 중매인들의 눈초리는 경매사의 눈길과 표정에 꽂혀있다. 중매인이 제시한 가격을 일람한 경매사는 이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중매인에게 낙찰한다.

 

 

대게는 주로 크기별로 구분하여 무더기를 만들어 진열해 놓고 무더기별로 경매를 붙인다. 한 무더기의 대게 위판이 끝나면 이내 옆자리의 대게 무더기로 이동해 위판이 진행된다. 위판이 끝난 대게는 미리 기다리고 있는 활어차 등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는 항구에 정박해 위판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대게잡이 어선이 어창에서 대게를 꺼내 진열한다. 울진대게 중 가장 최상품으로 치는 '박달대게'는 마리 별로 따로 진열해 경매를 붙인다. 대게를 비롯한 죽변항의 명품인 문어, 오징어, 방어, 대구, 새우 등의 수산물도 전부 죽변수협의 위판을 거쳐 판매된다.

 

 

 

위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적에 휩싸인 죽변항은 마치 바다 안개처럼 항구를 감싼 긴장감에 '한 편의 역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대게 뿐 만 아니라 대구, 복어, 오징어, 문어 등도 제철을 맞으면 이른 새벽부터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싱싱한 울진 앞바다의 생선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판과정 그 자체의 드라마틱한 전 과정을 직접 보며 포구의 어로문화를 체험하는 생태관광의 묘미를 즐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어민들이 축적해 온 어로문화가 도시인들을 끌어들이는 생태관광의 트렌드를 만든 셈이다. 죽변항의 공개위판 광경이 울진 '생태문화관광'의 정수를 맛보는 묘미로 각광받는 것도 위판과정이 보여주는 역동적이면서도 짜릿한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죽변항이 해마다 대게철에 펼치는 역동의 드라마는 대게 첫 조업이 시작되는 12월 초순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이어진다.

 

 

울진대게를 비롯한 대게류는 법률로 금어기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대게 수컷의 경우 해마다 11월 1일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포획을 허용하고 있으나, 암컷 대게는 년 중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 죽변항과 후포항의 어민들은 대게자원 보존을 위해 법률로 규정한 대게 조업 개시일인 11월보다 1개월을 늦춰 12월 초에 일제히 대게 그물을 바다에 깔며 조업에 들어간다. 또 자망 그물코도 기존의 180m/m 이상 규격을 240m/m 이상으로 늘였으며, 죽변수협과 함께 1일 위판량을 대게자망어선 1척 당 200마리로 한정하고 선원 1인당 100마리씩을 더해 일반적으로 4명의 대게자망어선의 경우 1일 위판량을 600마리로 제한하는 󰡐대게위판량 쿼터제󰡑를 자율적으로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어민 스스로가 1일 위판량 제한을 통해 대게자원을 보전하는 생태어로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죽변수협은 매년 어민들과 함께 “물게(속이 차지 않은 대게)는 연중 팔지도 사지도 말기󰡓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지속가능한 어업을 뿌리내리고, 울진대게의 품격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울진대게는 죽변항을 비롯한 후포항과 사동, 덕신, 오산항 등 울진지역 주요 대게 생산 어항을 찾는 관광객들과 외지 대게상인들로부터 "명품 브랜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울진 죽변항,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흥겹고 열을 지어 누워있는 대게의 몸부림이 흥겹다. 붉은 겨울의 '마주르카'는 애환과 고담함을 뒤로하고,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와 오늘도 쉼 없이 사람들의 가슴에 울린다.

 

글쓴이 : 남효선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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