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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이미홍_영덕을 만나다]‘쪽빛파도의 길’을 따라 문산호를 만나러 가다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1-12-27

 

 

영덕을 만나다

 

 

‘쪽빛파도의 길’을 따라 문산호를 만나러 가다

 

 

글 이미홍

 

  

쌀쌀한 바람이 순해지고 산과 들이 연둣빛으로 파릇해지는 봄을 지나 나무들이 초록으로 짙어가던 즈음에 날을 잡아 영덕 장사로 길을 나섰다. 안동에서 장사로 가려면 고속도로든 지방도로든 강구항을 기점으로 길을 잡아 내려가야 한다. 바다도 보고 장사상륙작전 비하인드를 간직한 문산호도 볼 요량으로 강구항에서부터 장사까지 ‘블루로드 쪽빛파도의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사전답사를 하며 한 번은 큰 도로를 따라 가보고, 한 번은 해안가 마을을 따라 들어갔다 나갔다를 거듭하며 갔는데, 찻길과 도보길을 번갈아 타고 걷는 것이 더 좋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표지판이 제대로 없는 곳도 있어 처음에는 차가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찾지 못해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가니 건너편에서 굴다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갈 줄도 알게 되었고, 항구에 들러 좌표를 찍고 해안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었다. ‘쪽빛파도의 길’에서 만난 마을들은 좁으면서 길게 바다에 접해 있었고, 길도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하여 거리가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스쳐 지나갈 때는 금방인 거 같았는데 막상  천천히 보려니 생각과 달랐다. 그러나 바닷가 마을을 따라 차로도 가고 걸어서도 갔던 시간들이 쌓여 이야기가 되었다.   

 

구계항이 보이는 쪽빛 파도의 길

 

‘쪽빛파도의 길’은 블루로드 D코스로 남쪽에서부터 치자면 포항과의 경계선이자 영덕의 시작점인 부경리 영덕대게누리공원에서 강구항까지 구간이다. 그 기착지이자 출발점인 강구항은 대게를 맛보러 영덕을 찾는 이들이 꼭 들러서 발도장을 찍고 가는 곳으로 영덕의 관문이라도 해도 지나치지 않다. 

 

 

 

4월의 끝자락에 나선 길이었는데, 대게축제를 볼 수 없었다. 매년 3월과 4월 무렵이면 대게축제가 열리던 강구항은 올해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축제를 12월로 연기했다. 올 때마다 북적거리던 강구항도 주말임에도 비교적 한산한 풍경이었다. 옛 강구다리를 지나 건너편 삼사해상공원을 뒤로 두고 있는 오른쪽 산 아래로 길을 잡아드니 왼쪽으로 강구항을 낀 흰색의 산책길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유럽풍 가로등과 의자가 강구의 풍경을 보며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큰길가에서 비껴 있어 모르고 지나치기 쉽지만 포구에 들어찬 배들과 대게 판매, 활어시장이 펼쳐지는 강구항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숨은 명소다. 또 해파랑길 19코스이자 강구에서 장사로 이어지는 블루로드 D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자 끝나는 길목이기도 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바다 쪽에서 걸어온 듯 보이는 도보객이 와서 앉는다. 잠시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내려와 남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길가에는 부두가 흥성거리던 그 옛날의 영광을 뒤로하고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간판과 녹슨 고철 더미들을 쌓아둔 철물점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한편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모퉁이를 돈 오포리 바닷가에도 포클레인과 크레인이 분주하다. 오포에서 삼사로 넘어가는 길, 햇빛 짱짱한 날은 아니지만 비 온 뒤라 맑은 공기가 대지를 감싸고 바다는 한층 깊은 물빛을 보여준다. 길동무가 있으면 심심치 않아 좋고 홀로라도 좋은 짙은 ‘쪽빛파도의 길’이다. 왼쪽으로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끼고 해안마을을 넘나들며 쉬엄쉬엄 걷기에 딱 맞는 그런 길이다. 

 

삼사해상공원 경북대종

 

 

바닷길을 따라 삼사리로 접어들면 오른쪽 언덕 위에 해돋이 명소이기도 한 삼사해상공원이 있다. 삼사해상공원에서 강구정보고등학교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삼시랑고개로, 큰 느티나무가 있어 예부터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이나 보부상들이 쉬어가며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동산이라 동산고개라고도 한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자리에 경북대종을 만들어 매년 해맞이를 하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을 울린다. 경북 지역에 살고 있는 이북 5도민의 염원을 담은 망향탑이 북쪽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북대종이 있는 곳에서 왼쪽 언덕 아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은 영덕의 바다를 색다르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어촌전시관을 둘러보다 전면 유리를 통해 짙푸른 동해를 마주하는 놀라움이 있다. 어촌전시관에서 해안 길을 따라 가면 삼사리 포구가 있다. 낚시꾼들이 심심찮게 찾는 명소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폭 안긴 것처럼 깊숙이 들어앉은 작은 포구 주변으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삼사리 바다산책공원

 

 

조금 더 올라가니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하얀 데크가 보인다. ‛삼사해상산책로’다. 바다 위에 설치된 교각은 바다를 닮은 파란색이고, 다리 위쪽은 파도의 포말을 닮은 흰색이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부채 같은데, 부채 손잡이 부분으로 들어가 부채살을 따라 바다를 한 바퀴 돌아 나오게 되어 있다. 봄이 가는 것을 시샘하듯 바람이 바다 위를 산책하는 발길을 쫓는다. 부채살 언저리를 돌아 나오는데, 산책로 앞 카페에서 바닷바람을 피해 들어간 누군가가 주문한 커피향이 열린 카페 문 틈새로 묻어나온다. 아쉽지만 갈 길이 멀어 커피의 유혹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한다. 더 아쉬운 건 삼사리에서 길이 끊어져 구계항으로 가려면 도로로 다시 올라서야 했던 일이다. 

 

구계항

 

 

구계리는 7번 국도에서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는 포구이자 국가어항인 구계항을 안고 있는 마을이다. 해파랑길과 블루로드를 지나는 탐방객이 풍경에 이끌려 절로 발길을 멈추는 곳이라 한다. 영덕의 대표적 대게 산지 중 하나이기도 한 구계항은 예전에는 작은 포구였지만, 국가어항으로 지정이 되면서 규모가 확장되어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입․출입하는 항구가 되었다. 날씨가 흐려 출항한 배보다 묶여 있는 배들이 많은지 포구 한쪽에서는 그물 손질이 한창이다.  배들이 드나드는 길목인 듯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 있고 그 사이로 배가 한 척 들어온다. 보기에는 두 등대 사이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데, 배가 지나고도 한참이나 남는다. 마을 안에 크고 작은 횟집들이 즐비한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포구에 활기가 넘쳐흘렀다고 생수를 사기 위해 들른 가게 주인이 말한다. 구계항 방파제는 수심이 깊어서 망상어, 학꽁치, 돔 등 어종이 풍부해 사철 낚시꾼들이 끊이질 않는다며, 한번 들러 낚시도 하고 횟집에도 가보라는 주인장의 인사를 끝으로 구계포구를 뒤로하고 원척포구로 향한다.

 

원척항 동신당

 

 

원척리는 ‘쪽빛파도의 길’에 접한 마을들 중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다. 물론 바다에 접한 동네 기준이다. 원척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못 찾고 길을 지나쳐, 유턴을 거듭한 후에야 원척리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마을이 육지 쪽으로 언덕을 따라 가파르게 자리를 잡고 있어 급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길을 미처 다 내려가기 전, 입구 언덕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고 모퉁이를 도니 당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동신당(洞神堂)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곱게 단장한 색시마냥 바닷가를 향해 자리한 동신당이다. 동신당 앞 가게 평상에 앉아 계시는 동네 어르신께 여쭈니, 옛날부터 여태껏 이 마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정월이면 어김없이 동제를 지내왔다고 하셨다. 이 근방 바닷가 마을 중에서도 역사가 깊고, 조상대대로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정성스레 동제를 지내는 건 원척항이 제일이라고 자랑하신다. 

 

깊고 험한 바다에 의지해 생을 이어가야 하는 어촌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한편, 바다로 나가는 이의 무사안녕을 빌며 정화수 떠 놓고 당을 쓸고 닦고 했을 이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당집이라는 생각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당은 좁은 황토계단을 돌아올라 뒤에서 당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뒤에서 당집을 보니 왜 문을 언덕 뒤로 냈는지 알 것 같다. 아무 것도 걸리는 것 없이 가장 바다 가까이에 접하는 지점, 바다로 들고나는 배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동신당이 있었다. 동신당에서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원척포구가 있다. 바다로 조업을 나간 듯 빈 배 한 척이 매여 있을 뿐 비어있는 항구를 보고 동신당을 본다. 인간의 지극한 마음이 닿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작은 마을인데 동신당이 있어 크게 느껴졌던 원척항을 벗어나 다시 도로로 올라섰다. 

 

 

부흥리 사신당 

 

 

원척을 지나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부흥리다. 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데, 장사해변이 저만치 마주보이고 문산호도 보인다. 이제야 만나게 되는 문산호가 반가워 카메라를 드는데, 마을 포구 쪽에서 방죽을 따라 블루로드를 걷는 도보객이 홀로 마을 앞 바닷가를 지나 장사해변 쪽으로 걸어간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모르지만 몇 시간 혹은 하루를 온전히 내어 걷는 모습이 보기 좋다. 문산호가 눈앞에 보이자 마음이 바빠지려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며 부흥리를 눈에 담는다. 

 

팔각정과 너른 주차장이 반기는 부흥리는 ‛2020년도 어촌뉴딜 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집도 사람도 오래되고 낡아 적적해진 마을에 벽화와 광장이 더해져 깔끔한 모습이다. 그 덕에 장사리 해변을 찾았다가 부흥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지금은 조용해진 바닷가 마을을 사람들 대신 사신당과 금빛 거북이가 지키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장사해변과 문산호가 보이는 바닷가에 사신당(社神堂)이 있고 그 앞에 세 마리의 황금 거북과 황금 거북알이 바다를 향해 자리를 잡고 있다. 거북이가 바다에서 올라와 사신당 앞에서 알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해신당이 아닌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당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언덕 위 담벼락 벽화들이 눈길을 끌고 황금빛 물고기 조형물 옆에 스쿠버들과 낚시하는 젊은 사람들의 소리가 간간이 더해진다. 할아버지 집을 찾은 듯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광장을 오가고, 낚시하는 아버지를 따라 나온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마을에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야 한다. 별다를 게 없는 풍경이지만 마을이 살아있는 것 같고 바닷빛도 더 푸르게 보인다. 

 

문산호가 보이는 장사해변 모습

 

 

부흥리에서 장사리 사이에는 부흥해변이 있다. 대부분이 스쳐지나가기에 오롯이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아는 사람들만 찾는 작은 아지트 같은 해변이다. 부흥해변을 지나면 그야말로 긴 백사장과 캠핑으로 더욱 유명해진 장사해수욕장을 만난다. 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전승기념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는고, 이를 따라 송림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저만치 문산호를 뒤로 하고 영덕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탑이 바다를 향해 있다. 바다 위에서 막 상륙한 듯한 학도병들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는 기념탑 앞에 잠시 서서 묵념을 하고 문산호를 향해 한 발 내딛는데, 사지에 몰린 학도병들이 마치 그날로 돌아가 지금도 이 자리에 우리가 있다는 듯 총을 든 모습으로 발길을 잡는다. 

 

장사해변을 지키는 학도병

 

 

선체에 새겨진 ‘문산 120’라는 글자를 눈으로 새기며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이 된 문산호 안으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지키며 적을 교란하기 위한 비밀군사작전이었던 장사상륙작전은 다큐멘터리와 영화로도 제작되어 알고 있었기에 따로 이야기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배 안으로 들어가 학도병들을 싣고 1950년 9월 14일 장사상륙작전에 실제 투입됐던 문산호와 당시 학도병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문산호 안으로 들어가는 길

 

 

기밀이었기에 기록되지 않았고,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컸기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까지 실패한 작전으로 불렸던 장사상륙작전. 이 사실보다 가슴을 울린 건 문산호와 학도병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 목소리들이었다. 학생모를 쓰고 교복을 입고 대구의 집결장소에 처음 모인 학도병들의 앳된 얼굴들과 마주한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고, 그때 살아남는 노안의 학도병들이 장사의 바닷가와 모래언덕을 가리키며 문산호에서 내려 상륙하다가 총을 맞고 죽어가는 친구들을 지켜봤던 그날의 현장을 마치 어제처럼 이야기하는 화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구조선에 오르지 못했던 39명의 전우들의 이름과 기억을 더듬어 확인해준 분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전시관 깊숙한 곳 장사상륙작전 스토리를 모래위에 그려내는 샌드아트를 보러 가다 만난 이름들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내가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그 아래, 푯말 하나하나에 학도병의 이름이 있었다. 순수했기에 끝까지 명령대로 그 자리를 지켰던, 어렸지만 의연했던 학도병들의 이름을 밟지 않으면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마치 그분들의 희생을 딛고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듯했다. 

 

 

 

 

문산호가 먼 시간을 건너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것은 참 다행이면서도 마음을 아프게 때리는 대목이다. 잊혀가던 학도병들의 존재를 1997년 장사갯벌에 그들과 운명을 함께한 문산호가 모습을 드러내 증명해 주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다가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772명의 학도병들 대부분이 희생되었다는 사실과, 승리한 작전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오래 묻혀있었다는 것, 게다가 아직까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가슴이 아린 일이었다. 뒤를 보는 대신 앞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세상이고 그 또한 맞는 말이지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어린 학도병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이름들이다. 하나로 뭉뚱그려 장사작전에 희생된 학도병들이 아니라, 이 누구누구, 장 아무개, 박**, 그런 이름들이다.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을 빌자면, ‘내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 처럼 그 이름들을 기억해주는 것은 내 마음에 꽃을 피우는 일이다. 

 

문산호를 돌아 나오니 그새 장사해변을 찾은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바다를 보러 온 이도 있고 솔숲 앞 해변가에 텐트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백사장을 따라 문산호를 향하는 발걸음들도 있었다. 백사장에 앉아 짙어지는 바다를 뒤로 육지에 한 발을 디딘 채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문산호를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헌화가의 배경이 된 송라 거북바위

 

 

문산호의 여운이 남은 채로 ‘쪽빛파도의 길’ 시작점이자 끝지점인 부경리 영덕대게누리공원을 들렀다. 여기서 부터가 대게의 고장 영덕임을 알려주는 대게공원은 생각과는 다르게 바닷가가 아닌 차들이 쌩쌩 오가는 길가에 있다. 공원을 둘러보다 신라 향가인 헌화가 이야기를 만났다.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과 함께 동해안을 따라 올라오던 수로부인 일행이 경주 안강, 포항 흥해를 지나 송라(현 부경리)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수로부인의 눈길이 머무는 벼랑 바위 위에 아름다운 철쭉꽃이 피어 있었고, 그 꽃을 마을에서 물질을 하며 암소를 돌보던 노옹(老翁)이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불렀던 노래가 헌화가이다. 그리고 그 벼랑 바위가 있던 장소를 이곳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 밑에 바위가 있다. 거북모양을 닮아 거북바위라 불리는 그 모습 속에는 오래 전 부경리 바닷가에 살던 노옹의 마음과 가사(歌詞)를 품고 있는 듯 했다. 문산호를 보고 아린 마음이 남아 있었던 까닭인지 거북바위에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헌화가 속 이름 없는 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듯 문산호의 학도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을 꺾어 바치고 싶었다. ‘쪽빛파도의 길’ 끝, 작은 카페에서 미뤄두었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길을 되짚어 올라오며 한 번 더 문산호를 담고 왔다. 7번 국도를 따라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잠시라도 멈춰 문산호를 보고 가면 좋겠다. 열일곱, 열여덟 살의 학도병들이 지켜낸 푸른 바다가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참고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전시자료, 리플렛 자료

영덕군청 홈페이지 

영덕의 지명유래

 

 

 

글쓴이 : 이미홍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융합콘텐츠학과를 졸업하고, 민속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저서로 안동의 문화인물『하남 류한상』, 안동문화100선『안동댐』등이 있다. 현재 웅부문화원연구소부소장, 안동문화원 동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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