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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11

어제는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그린다. 그리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겠지. 어제는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그린다. 그리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겠지. 봄이 오면 바람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난다. 봄바람은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마음이 간질거려 함께 봄을 느끼러 나간다. 나뭇잎 소리, 새소리, 개울물 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너와 나의 웃음소리. 약올리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기 위해 저울질하는 것이다. 같은 맘이지만, 서로 다른 얼굴로 오해하기도 하고, 어느새 같은 얼굴로 이어지기도 한다.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은 알쏭달쏭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췄다. 우리의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같은 공간에 갇혀 버린 듯하다. 한 여름 밤에 여자는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왕자님이 꽃을 들고 나타난 것일까? 잠든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한 미소가 지어진다. 힘들었던 하루의 끝. 뒤에서 다가와 살포시 안아주는 너, 너의 위로가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다. 목화솜보다 보드라운 당신의 품속에 안길 때면 따스한 봄 햇살 보다 평온함을 느낀다. 클래식 음악 같은 영혼의 심장소리는 아늑한 성당에 울려 퍼지는 천상의 소리와 같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꿈이어라. 작약 꽃이 필 무렵에는 그 곳이 생각난다. 따스한 햇살에 누긋해지는 모습이 생각난다. 나를 보며, 붉게 물든 당신 얼굴이 생각난다. 싱그럽고 순수한 소녀가 있다. 한참 동무들과 뛰어놀 나이에 공깃돌 대신 호미와 바구니를 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귓가에 꽃은 하얀 백합대신 귓가에 하얀 머리카락만 무성해져 버렸다. 그녀의 이름은 어머니였고 한 때 가녀린 소녀이며 한 평생 여자였다. 경험한 일들을 머릿속에서 잊혀지기 전에, 그림을 일기장으로 대신한다. 무엇인가를 애절하게 생각하다보면 그 대상에 대한 환영을 경험하게 된다. 담장에 매달린 철사는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인간에 의해 유용하게 쓰이다 버려진 안타까운 철사. 휘어진 철사 사이로 그리운 사람의 잔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 만날 수 없어도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밤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당신의 숨결을 그려봅니다. 그대를 만나고 /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 그대를 만나고 /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 그대를 안고서 /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이적의‘다행이다’노래를 듣고...... 늦은 밤을 지나 차디찬 새벽이 다가오는 밤에 그림을 그리다 답답함을 못 이겨 앞마당을 서성인다. 눈 내리는 밤은 저 밝았던 달을 뒤로 한 채 별이 되어 내리고 있구나. 화려한 보석을 해줄 수는 없지만, 그대는 어떠한 빛나는 보석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입니다.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그림 뿐...... 첼로 소리를 좋아한다. 화려한 무대 위에 떨어지는 별빛 무지개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 가녀린 목소리로 내 귓가를 속삭인다. 완벽한 합주곡이었다. 봄을 깨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소리는 나를 깨우고 움츠린 몸을 깨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황홀감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나에게 속삭여 주는 소리 나를 달래주는 소리 나긋나긋 이야기 해주는 소리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당신의 소리 서로 어긋나는 스텝, 삐거덕 거리는 우리의 숨소리, 흐르는 음악에 나를 맡기고 너에게 기대어 본다. 지금의 행복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와 함께 해주는 너로 인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에... 그리움은 그리 쉽게 지지 않는 것이다. 언제라도 간절할 때 다시 피는 것이다. -피재현(시인)- 내 뜨거운 심장의 붉은 꽃을 전달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김영목(화가)-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너와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더라도 서로를 지지해주는 것, 그것 또한 사랑입니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짧은 순간에 다가 왔지만, 세상의 시계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감각은 한 곳에 집중되었고,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께 정겹게 물어본다. “꽃샘추위에 오데로 가시니껴?”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올 내일 하는데 오늘 하루 손녀하구 꽃구경 하로 가니더.” 세 사람의 모습이 내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긴 여운을 남 긴 채 가까운 마실을 거닌다. 노부부는 손녀 손을 새순처 럼 살포시 부여잡고, 이 길은 인생의 이야기를 말해주듯 시작과 끝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먹먹해져 왔다. 행복해보여서일까? 아님 날린 흙이 눈에 들어가서일까? 벚꽃 잎이 내 얼굴에 촉촉하게 내려앉는다. 바다에 가면 따스한 심장을 느낀다. 그 여인 또한 따스한 심장을 가진 소녀일 때가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은 하루에도 수백번 만나고 헤어진다. 군중에 한사람은 누군가를 바라보고, 만나고, 인연이 되어 서로에게 많은걸 주고받는다. 당신들은 과연 수많은 사람들 속에 어떠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또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에 감동과 그리움,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가? 나의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필연이 되어버렸다. 엉뚱하지만 지혜로운 매력을 가진 당신.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유난히 아름다운 밤 하늘, 오늘 만큼은 우리 함께 하자.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하다. 동무들과 뛰어 놀던 시절,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배고픔도 잊은 채, 까르륵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운 나의 친구들아, 보고 싶다. 집에 소가 있었다. 묵묵하게 논밭 일을 해주던 소. 재촉 한번 없이 내 발걸음에 맞추어 집에 가던 소돌이가 생각난다. 밤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구슬프게 울어댄다. 달빛에 취해 울고, 그리워서 울고, 짝을 찾아 울어댄다. 부끄러운 여름밤에 귀뚜라미 단원들과 작은 음악회를 열겠구나.

따뜻한 철사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채 담벼락에 걸려있는 철사, 깨진 항아리를 동여맸거나 무언가를 매달고 창고에 걸려 있다가 쓰임을 다하고, 다시 사용할 때를 기다리며 녹이 슨 채 담벼락에 걸려 있었으리라-

 

영목은 우연히 그것을 보았을 테고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철사의 선을 따라 추억과 상상 속을 유영했으리라

 

이때부터 영목은 화폭에 철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족, 연인 등 사람은 물론, 달과 악기, 섬, 느낌까지도 철사를 구부려 형태를 만들고 마치 캔버스 위에 철사를 올려놓은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렸다. 처음에는 직접 철사를 구부려 형태를 만들어보기도 했을 테고 이제는 굵고 가는 철사들이 완곡한 원형을 이루며 마치 철사 스스로 구부러진 것처럼 태(態)를 만든다. 어떤 그림에는 철사가 그림자를 달고 나타나기도 한다.

 

철사는 가장 강한 물질인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자유자재로 구부러지고 꺾어지는 의외의 속성을 가진다. 이 구부러짐, 유연함이야말로 철사의 본질이다.

 

내가 영목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영목이 철사같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금속성, 평면의 화폭이 담아내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선형(線)의 부각(浮刻)은 영목의 그림에서 늘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영목도 그렇다. 영목은 단순하고 우직한 철사같다. 그러나 영목은 늘 웃고 있다. 따뜻하다. 영목의 그림은 사랑에 빠진 연인을, 손잡고 꽃구경 나온 가족을,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를, 한 곳을 바라보는 부부의 염원을 그린다. 영목은 늘 아내와 친구와 이웃 속에서 웃는 모습으로 있다. 뻣뻣한 철사처럼 생겼지만 철사처럼 유연하고 잘 구부러지고 심지어 따뜻하다.

 

영목은 철사와, 종종 부재료(副材料)로 사용되는 알루미늄판, 돌 등의 견고한 물성을 가진 재료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세상과의 소통과 사랑과 생명을 그려내고 있다. 극도로 단순한 철사의 실루엣은 그만의 감각적인 바탕과 한 마리 새와, 나풀거리는 나비와, 한 송이 꽃을 만나면서 유기체로서의 생명을 획득하고 소통을 시작한다.

 

평면성과 추상성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영목의 회화는 추상을 표상하는 철사의 유려함이 마치 음악의 선율처럼 화폭 전면에 흘러 그가 추구하는 내용과 결합된다. 결코 관념적이지 않으면서 전통 회화의 구성요소를 충족시키는 문학성을 지닌다. 여기에 그의 최근 작들은 절제된 단순성을 통해 그의 작업이 우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예술이 인간의 심미적‘표현’이라고 할 때 단순함을 넘어설 미덕은 흔치 않다.

 

그의 그림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이지만 전위(前衛)하지 않는다. 그는 술 잘 먹고 가난하지만 기행(奇行)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목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릴 테고, 내가 가진 그의 그림 한 점은 나의 따뜻한 노후를 보장해줄 것이다.

 

글. 시인 피재현

 

철사를 그리다 김영목 Kim young-mok 일정 2018년 3월 28일(수)~4월 2일(월) 장소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제1전시장(1층) 화실 경북 안동시 남선면 가현길 49 전화 010-3094-9432 작가 블로그blog.naver.com/mok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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