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류명화_봉화를 걸으며]삶을 이어가는 길
- 류명화
삶을 이어가는 길
- 수몰된 부보상의 흔적을 따라서 -
호젓한 가을 물야(物野)라는 지명에 끌려 물야면 오전약수탕을 찾아 나섰다. 만물이 들을 이룬다니 이 얼마나 가을과 어울리는 이름인가! 오곡백과가 풍성한 들녘을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다.
오늘 찾아가는 오전약수탕은 봉화읍내에서 915번 지방도를 따라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이곳 약수는 탄산약수로 조선 성종(1469~1494)때 보부상(부보상)에 의해 발견 되었고 조선시대 전국약수 대회에서 최고의 약수로 선정되었다.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은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고 했으니 오래전부터 이곳에 약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약수터에는 ‘요산약수(樂山藥水) 인생불로(人生不老)’ 라는 글이 붉게 써졌으니 좋은 산과 약수가 있어 인생에 늙음이 없다고 하니 약수를 보고도 마시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곳은 약수뿐만 아니라 낙동강 제1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바로 이곳 물야면 오전리 선달산에서 발원해 남서로 흘러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를 지나 문경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니 물야면 오전리는 영남의 젖줄이며 문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낙동강 그 물의 고향인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조선시대 물류를 책임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부보상의 거점지가 있었다.
이렇듯 물 좋고 산세 좋은 마을에 왔으니 이곳 오전리와 후평장을 배경으로 삶을 이어온 부보상 이야기를 한 꼭지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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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이 아닌 부보상이라 명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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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리 일대에서 부보상의 흔적으로는 오전약수탕과 함께 부보상위령비와 제단이 있어 당시 땅을 기부했던 부보상들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전댐 북쪽에 위치한 부보상 위령비에 의하면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부보상들이 모은 전 재산으로 이곳 오전리에 토지를 구입해 경작하다가 마을 주민들에게 기부하였고 그 고마운 뜻을 기리고자 매년 9월 말일에 이들을 위한 추모제를 올렸으나 오전댐의 건설로 묘소가 수몰되자 이곳으로 옮겨 위령비와 제단을 마련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렇듯 부보상들의 거점지 역할을 해오던 이곳에 많은 부보상들이 농사를 지으며 정착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주실령과 늦은목이를 넘어 온 부보상들이 오전리 객주에서 하루를 묵어 후평장을 보고나면 가깝게는 부석, 풍기, 영월로 옮겨가고 멀게는 죽령을 넘어 충청, 경기까지 행상을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오전댐 아래 후평(뒤뜰)마을은 1948년경까지 물야면에서는 유일하게 5일장이 섰던 곳으로 부보상들이 부석, 풍기, 봉화, 춘양, 태백, 영월 등 각처에서 드나들었으며 도보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금은 수몰돼 부보상들의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지만 후평리 어른들 이야기에 의하면 장이 성행했을 때는 지금의 저수지자리에 객주가 여러 곳 있었다고 한다.
보통 5일장은 군마다 3곳 많으면 4∼5곳으로 서로 다른 날짜에 번갈아 열렸는데 봉화군은 내성장과 춘양장 그리고 이곳 후평장이 규모가 제일 큰 장이었다. 예전 5일장은 지금의 상설시장과도 같은 역할을 했으며 굳이 부보상이 아니더라도 이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물물교환하거나 사고파는 장소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상품유통체계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당시 후평장에서 거래되는 품목으로는 곡물과 생활용품으로 항아리나 유기 또는 농사일에 꼭 필요했던 농우(農牛)도 주요품목이었다고 한다. 바다가 있는 울진으로부터 미역과 소금, 마른오징어, 동태, 간방어, 마른가자미, 생문어등 짚으로 엮은 청어 같은 물품이 이곳 후평장으로 들어오고 이곳에서는 잡곡류와 유기 그리고 송이, 목이버섯같은 산약초와 인삼, 담배가 주요 품목이었다고 한다.
영월이나 태백 같은 두메산골에서는 농사일에 큰 몫을 했던 농우가 주요 품목 중 하나였다고 하니 길이 험하고 돌부리가 많은 산길로 소를 몰고 올 때는 소발 굽이 상하지 않도록 소도 두꺼운 짚신을 만들어 신겨서 다녔다는 재밌는 이야기도 이곳 후평리 마을 어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부보상의 품목이 다섯 가지 품목이었는데 비해 시대가 흐르면서 품목도 다양하게 늘어나 장이서는 곳마다 사고파는 사람들도 다양해져 장터는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부보상들 가운데는 나름의 단골도 생겨나고 이들 단골 중 큰잔치라도 있을라치면 모월모일에 문어와 가오리 같은 생물을 특별 주문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등짐을 지고 도보로 행상을 하니 신속하고 신선하게 전달 받으려면 생물의 경우 몇 곱절 더 값을 치러가면서도 특별히 주문했다고 하니 문어 같은 생물은 양반 댁에서도 아주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 지역 잔칫집에 문어가 빠지면 손님대접이 소홀하다고 여길 정도로 문어는 잔치 음식가운데 최상급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런 행상을 통해 간고등어나 가오리찜 같은 새로운 먹거리가 탄생하기도 했으니 부보상의 역할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이 마을 저 마을 이고 진 보따리장수들이 짚에 엮은 청어(호메이고기), 미역, 간고등어, 김 같은 먹거리를 팔러오는 상인들이 있었다. 대바구니를 켜켜이 묶어 산처럼 짊어진 전라도 사투리를 재미나게 하던 장사꾼도 있었다.
불과 30~40년 전에도 있었던 풍경이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지니 조선시대 장터 풍경을 감히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한 때 번화했던 후평장도 교통이 원활해지면서 장터는 없어지고 그 때 점포로 쓰이던 초가 건물들은 허물어져 없어지거나 경량지붕으로 개조돼 농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널찍한 마을 중앙로를 마주보고 선 열 가구 남짓한 집들이 점포형 구조를 하고 있어 예전 이곳이 장터였음을 짐작할 뿐 그 어디에서 번화했던 후평장을 그려볼 수가 없었다.
이 밖에도 오전리에는 가마터가 있어 가매실 이라 부르는 곳과 가평리 옹기골, 전골(쇠녹임), 개단리의 점골(店谷)은 기와와 옹기를 구워 팔던 옹기점이 있어 붙은 지명으로 오전을 중심으로 근거리에 상업관련 품목들을 생산 조달했으니 미루어 짐작컨대 오전리와 후평장은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컸을 수도 있다.
(수몰전 오전리)
(수몰된 오전리)
오전리와 후평장 그리고 이곳을 배경으로 삶을 이어가던 부보상들의 흔적은 1995년 오전댐과 함께 이제는 물속 깊은 곳에 잠겨버렸다.
그 옛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든 부보상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전댐 맑은 물은 오늘도 무심히 7백리 낙동강을 따라 흘러간다.
- 글쓴이 : 류명화
- 1972년 청명한 식목일 오후 2남7녀 중 아들이길 바랐던 부모님의 서운한 마음과 상관없이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똑똑하진 않지만 나름 삶을 즐길 줄 알고 퉁퉁한 아랫배와 홀쭉한 주머니 사정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건강한 여성이다. 지금은 봉화의 아름다운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